엔드크레디트란 영상이 끝나고 제작 참여자들의 이름들이 나열되며 나오는 것이다.
검은 화면에 단지 하얀 글자에 지나지 않은 얼굴 모를 이름만이 흘러갈 뿐이다.
거기에 대부분 가사말 없는 음악만 흘러나오고 불 켜진 극장에 마치 퇴장 음악과도 같다.
영화를 너무도 좋아하기 전에 나도 붐비는 사람을 피해 서둘러 자리를 일어났다.
그렇게 서둘러 나오면 그날 보았던 영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그렇게 며칠 지나고 나면 그 영화는 더 이상 생각나지도 않았다.
'Into the Wild'란 영화를 보고 마찬가지로 영상이 끝나 일어나려던 그날,
엔드크레디트와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이 너무나 좋아 한참을 앉아있었다.
시간이 지나 심심해진 눈은 자연스레 화면으로 옮겨가고 이름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극장 청소부가 들어오고, 극장 직원의 눈치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앉은 자리가 불편해 이미 음악소리는 귀를 떠나 결국에는 나와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치를 받기 전까지 앉아있었던 시간에
영화 장면 장면이 음악과 함께 귀를 통해 다시 보이는듯했고,
영화관을 나와서 영화 음악을 찾아보고 또 영화에 대해 알아보고,
그러다 다른 사람의 평도 읽어보고 하니 그제야 그 영화를 다 본 것 같았다.
그 이후로 영화를 보면 끝까지 자리에 앉아 마지막 한 글자까지 다 보았다.
처음에는 앉아 있는 자리가 여간 편하지 않았다.
심지어 엔드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있는 중에 직원이 안 나가고 있는 나를 보고
내게 오더니 영화가 끝났다고 알려주는 등의 여러 눈치를 이겨내는 게 쉽지는 않았다.
왠지 그런 내가 영화를 좀 보는 허세처럼 비춰 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차츰 주위의 시선과 바쁜 시간들 속에서 무뎌져 갈수록
혼자 남아있는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내 것이 된듯했다.
영화관을 가득 채운 여운의 음악에 좀 전의 영화 장면 하나하나가 떠오르고,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제작자, 스태프들 그리고 촬영 장소 또 삽입곡의 제목들까지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제일 마지막에 들어가 있는 감독의 짧은 한마디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인사이드 아웃’감독 피트 닥터 曰 - This film is dedicated to our kids. Please don't grow up. Ever.)
그렇게 영화를 복기하고 나서야 한 편의 영화가 마침내 끝이 나는 것이다.
아직도 온전한 한 편의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나가는 사람이 많다.
쿠키영상이나 제작 영상 혹은 색다른 엔드크레디트와 같은 흥미요소가 없다면
관객들은 일제히 빠져나가 버리고 단 몇 명만이 남게 된다.
그렇듯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친구랑 영화를 보게 되면 그날의 영화 엔딩 크레디트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몇몇 극장들이 엔드크레디트까지 불을 켜지 않는 등 전보다 나아진 영화관람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이렇듯 엔드크레디트의 의미는 영화에 대한 나의 태도이며
영화 모든 제작 참여자들의 대한 깊은 감사와 나만의 격려라 생각한다.
약간의 배려와 매너로 더 나은 영화문화가 자리 잡지 않을까 한다.
좋은 영화란 영화관을 나와서부터 시작한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엔드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짧은 시간 속에 긴 여운이 있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들로 쉬이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 영화가 좋았더라면 바로 일어나지 말고 영화음악과 함께 그 여운의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 한다.
엔딩크레딧 다 긑날 때까지 보고 일어서서 나오다가, 마찬가지로 엔딩크레딧을 끝까지 보고 나오는
다른 사람을 보면, 서로 미소를 지으면서 인사하게 되기도 하죠.
저는 제 자신이 어느 작품에 참가했다가,
엔딩 크레딧에 제 이름이 나오길 기다리고 기다려서,
결국 나오는 걸 보고(나온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보고 싶었어요),
정말 제 이름이 거기에 나오는 걸 보니,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는 감동과 기쁨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들은, 그나마 그들의 기여를 누군가가 적어도 기록하고 평가는 해 준 사람들이죠.
실제로 작품에 참가하고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이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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