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강단유사사학은 반파국이 장수를 수도로 하고 전라도 동부지방을 영역으로 한 가야연맹체의 한 나라라고 주장하며, 장수가 철의 생산과 유통으로 국력을 다져 봉수망을 구축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 주장엔 전혀 근거가 없다. 그들 스스로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직은 반파국과 제철유적의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았지만, 반파국 가야 고총에서 단야구와 편자를 중심으로 마구류, 무구류 등 지역색이 강한 철기류가 출토되어 그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일단 반파국이 봉화 왕국으로 융성하는데 철의 생산과 유통이 결정적인 공헌을 했을 것으로 유추해 두고자 한다.
이들 강단유사사학도 여타 강단유사사학처럼 고분이 가야식이라고 하면서 전라도 동부를 가야라고 주장하나, 묘제는 한반도 남부식이지 가야식이 아니다. 이들이 장수의 봉수망과 제철 유적이라 주장한 유적 역시 가야 토기를 근거로 하나 이들 토기는 한반도 남부식 토기이고 가야식 토기가 아니다. 즉 장수가 반파국의 수도이고 그들이 주장한 봉수와 제철유적이 반파국의 것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들은, 가야연맹체의 구성원에 불과하며 수도를 지킬 읍성조차도 없는 반파가 고대왕국 백제를 침략하여 영토를 탈취하여 봉화망과 제철소를 운영하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소설이라 하기도 어렵다. 곽장근은 그가 주장하는 봉화나 제철 유적이 그가 주장하는 시기의 것이라 입증할 탄소연대측정의 결과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곽장근이 제시하는 봉화와 제철 유적 자체의 존재 여부를 의심하는 견해도 있다. 아무런 실증이 없는 주장을 근거로 정부 예산을 받아내서 아무런 실증이 없는 결과물을 내놓아도 용인되는 것이 강단유사사학과 강단유사고고학이 자랑하는 실증주의의 정체이다.
그들이 제시하는 유일한 근거는 「일본서기」의 “반파가 자탄과 대사에 성을 쌓고, 만해와 연합하여 봉수와 저각을 설치하여 일본에 대비하였다”라는 이야기이다. 그들에 따르면 대사는 하동이므로 하동부터 장수까지의 봉화망이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하동부터 시작되는 봉화망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들에 의하면 반파는 백제를 침략하여 영토를 확보한 나라이며 봉수망을 운영할 정도의 대국이고, 그들이 인용하는 「일본서기」에 의하면 반파는 신라를 괴롭히는 나라인데, 일본은 겨우 5백명으로 반파를 진압하려 했다. 그들의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는 역사소설도 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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