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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유사사학은 안라회의와 사비회의라는 회의 형식의 새로운 코미디를 개발하여 소설 「야마토임나」를 풍성하게 한다. 강단유사사학은 위 「일본서기」 529년 3월 이야기를 근거로 529년 3월 함안의 안라국에서 김해 창원 영산을 신라로부터 독립 시키기 위한 회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강단유사사학은 함안이 가야의 지방이 아니라 독립성이 강한 가야라고 보아 함안의 안라국이 회의를 주재했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사』에 의하면 함안이 아나가야 또는 아시량국이므로 함안이 안라국이라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강단유사사학은 「일본서기」의 안라가 아나나 아시량과 음상사라는 가짜음상사로 함안이 안라국이었다고 우긴다. 강단유사사학은 안라가 회의를 개최한 이유는 동쪽으로 진출하려는 백제와 서쪽으로 진출하려는 신라를 외교력으로 물리치고자 하는데 있었다고 한다.
함안의 마을 국가가 백제와 신라를 불러들여 회의를 한다는 것부터 코미디이고 더 가관은 백제대표는 회의장인 고당에 앉지도 못하고 땅에 앉아서 회의를 하였다는 것이다. 강단유사사학은 백제대표가 땅에서 회의에 참석한 것은, 안라가 백제가 기문 대사를 취할 때는 백제 편이었다가, 안라회의 시에는 백제를 견제하기 때문이라 한다. 강단유사사학에 의하면 임나=가야가 연맹체인데, 백제가 가야를 침입할 때 안라가 백제 편이라면, 안라가 왜 임나=가야의 연맹체 소속인지 알 수 없다. 더구나 강단유사사학에 의하면 신라에 뺏긴 가야 소국을 가야 연맹체로 복귀 시키는 목적의 회의이므로, 신라 대표는 홀대 할 수 있어도 백제 대표는 홀대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달에 겨우 두 세번 회의가 있었던 것도 우습지만, 백미는 백제 대표가 당 아래에 있는 것을 한스럽게 여겼다는 것이다. 백제와 신라가 함안 마을 국가가 개최한 회의에 참석하는 것부터 말이 안 되지만, 그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상식적으로 함안이 다 도륙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백제 대표를 땅바닥에 놓아 둘 수 없고, 만약 그랬다면 백제 대표가 자리를 박차고 가버리지, 거기에 남아서 그것을 한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열도 마을국가들간의 이야기라 하여도 코미디인데, 이러한 이야기를 한반도의 백제 신라와 연결시키는 강단유사사학의 탁월함에 숨이 멈춰질 뿐이다. 그들은 안라를 한반도에 정착시키기 위해 철면피를 뒤집어 쓰고서라도 일제유사사학에 헌신하는 경이로운 투혼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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