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유사사학은 근초고왕 시 백제와 신라. 양국은 야마토왜와의 독점적인 교역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치열하게 경쟁하였으나 백제측의 우세로 끝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전술하였듯이 열도에는 가야가 먼저 진출하였다. 3세기 말부터 백제가 열도에 진출하였으므로 열도의 지배와 관련하여선 백제와 가야의 대립이 처음에는 있었을 수 있지만 신라와 백제의 대립은 있을 수 없다. 신라가 열도와 교역하려 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신라는 백제의 열도 정벌 시 백제에 협력하려는 방안까지 고려하였다. 가야가 먼저 열도에 진출한 후 백제가 관할하지 않았던 한반도와 열도의 교역을 하였겠지만, 백제의 열도 진출 후엔 열도의 무역도 백제의 관할이 되므로 가야의 무역이란 있을 수 없다. 더구나 백제가 열도에 진출하면서, 열도에 진출하여 한반도와의 교역을 하고 있었던 허황옥계(타밀계)가 백제에 복속되고, 한반도의 가야 권력 자체도 고령의 토착세력으로 이전되므로 가야는 해상무역에서 완전히 퇴출 당한다. 열도가 백제 땅이고 동아시아의 유일한 해상무역세력은 백제이므로 강단유사사학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소설에 불과하다. 그들이 백제 신라 임나=가야와 야마토왜의 교역 근거로 주장하는 「일본서기」의 조공 이야기는 열도의 마을국가들이 백제의 담로나 왜왕과 더 밀접한 관련을 맺어 주변 마을국가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려는 시도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강단유사사학은 대사=다사진=하동이라 날조하면서 가야와 백제가 야마토왜와의 교역을 위해 하동을 두고 경쟁하였다고 주장하나, 고령이 가야의 맹주국이라면 열도와의 무역을 위해선 낙동강을 통해 김해로 가거나, 김해에서 가까운 남해안으로 가면 되고, 지리산을 넘어 섬진강으로 가는, 반대방향으로 우회하는 경로를 취할 필요가 없으며, 백제는 서해안이나 전라도의 남해안으로 가면 되고, 섬진강 건너의 하동을 경유하여 가는 경로를 취해야 할 필요가 없다. 즉 하동이 야마토왜와의 교역을 위한, 백제와 가야의 쟁탈지가 될 이유는 전혀 없다. 강단유사사학의 말대로 백제 신라 임나=가야가 야마토왜와의 교역을 원하고, 야마토왜의 군사력이 한반도 남부의 정세에 지대한 영향을 줄 정도였으면, 야마토왜는 삼국 모두에게 교역을 허용하면 되고, 그 중의 한 나라만을 택할 이유는 없다. 일제·강단유사사학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서 「일본서기」가 전하는 열도의 마을국가 이야기를 한반도의 역사라 사기 치고 있다.
강단유사사학은 가야는 백제와 야마토왜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하려 하였고, 백제는 가야 지역 내에서 야마토왜와 직접 교역하려 하여, 가야와 백제 사이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일본서기」의 열도 이야기를 한반도에서 있었던 일이라 사기 치려다 말도 되지 않는 소설을 창작하고 있다. 백제는 항해능력이 없어서 가야 지역 내에서 야마토왜와 교역하려 하였는가? 항해능력이 없었다면 왜 백제는 다사진을 차지하려고 하였는가? 도대체 그들의 소설은 앞뒤조차도 맞지 않는다. 똑같은 백제 위세품이 나와도 일제의 소설에 따라 남원은 임나=가야, 나주는 마한, 열도는 야마토왜, 충청도는 백제라고 주장하면서, 위세품을 교역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강단유사사학은 가야도 하동을 통해 해로로 중국과 교통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역품목이 발견된다는 것이 그 나라가 교역을 주도적으로 행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야는 백제가 행하는 교역의 당사자였을 뿐이다. 연맹체의 마을국가가 고대국가 백제의 해상무역권을 침해하였다는 주장은 소설적 가능성도 없다. 가야나 신라가 해상무역을 하였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들은 교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일제의 소설에 무한한 충성을 바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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