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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단유사사학은 漢나라가 예맥조선의 북쪽에 있었다고 하면서 漢에 망하는 예맥조선의 왕검성은 현재의 평양이라 사기친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거짓말이다. 위만은 요동고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동쪽으로 도주하였으며, 진한 교체기에 예맥조선에 중국인 망명자들이 모여들자 준왕은 이들을 서부에 살게 하였으며, 위만도 서쪽에 거주하게 해주면 서쪽을 지키는 번병이 되겠다고 하였다. 예맥조선이 한반도 내라면 서쪽을 지킨다는 것은 바다를 지킨다는 말밖에는 되지 않는다. 『사기』 「흉노열전」은 BCE 200년 경 흉노의 상황에 대해 “모든 좌방의 왕과 장수는 동쪽에 위치하여 상곡을 지난 동쪽을 맡아 예맥조선에 접했다”라고 한다. 『사기』 「흉노열전」은 “이때 한(漢)은 동쪽으로는 예맥조선을 공격하여 군으로 삼았다”고 한다. 흉노와 한(漢)의 동쪽이 예맥조선이므로, 漢의 동북쪽에 예맥조선이 있었다. 즉 漢이 예맥조선의 북쪽과 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제·강단유사사학이 사료와 완전히 상반되게, 漢이 예맥조선 북쪽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예맥조선 왕검성이 평양이었다고 사기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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