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숙님 뇌출혈 발병 1년이 되었습니다. 왼쪽 편마비, 인지 부족, 깊은 사고 못함, 혼자서 할 수 있는 일 없으심. 기저귀. 휠체어 이동이십니다.
시부모님 모두 돌아가셨고 시숙님은 미혼이라 아내도 자녀도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 쓰러지신 후 모든 과정들을 우리 두 부부가 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들을 떠올린다면 너무 힘든 과정이었고 초반에 너는 친 가족이 아니니 그런식으로 밖에 대응을 못한다며 항상 저를 친 가족이 마땅히 해야하는 그리고 느껴야하는 그 선상에 올려 놓고 저의 부족함을 탓하더라고요.
그래도 힘든 일을 겪은 남편 생각해서 서로 시숙님 일로 다툴일도 있었고 그랬지만 지금까지 잘 견뎌왔습니다. 시숙님 일 말고도 저희는 부부관계가 안좋을 때가 많이 있어서 힘든 결혼 생활을 해왔지만 지금까지 잘 견뎌오고 살아왔습니다.
제가 만약 종교가 없었다면 저는 진즉에 이 모든 일에 방관자로 살았을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어느정도 하고 당신이 이젠 알아서해! 이런 삶 말입니다.
그나마 신앙 붙들고 살다보니 시숙님께 최선을 다해 걸어왔습니다. 매주 마다 병원 가서 예배 및 기도해 드리고 시숙님이 워낙 지금 부정적 생각들이 많고 인지가 안돌아와 좋은 말들 격려하고 때론 다리 팔 주물러 드리고 오는 과정들입니다.
인지가 잘 돌아오지 않아 선택한 방법이 월요일 부터 금요일까지 아침에 잠깐 전화통화 매일 하는 거였어요. 전화 하면 유튜브 보면서 제수씨가 전화 한다는거 알고도 일부러 안받고 3-4번을 해야 받고 받아서도 듣는 말은 “왜요!!”왜 전화 했냐는 퉁명스런 응대, 때론 화를 내기도 하는 반응들 등 힘에 부칠 때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시숙님 입으로 “전화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저와 친한 지인들은 난 절대 그렇게까지 못한다고 말하셨다고 그 한 마디 남편에게 전한적이 있었습니다. 나를 알아달라 생색내려 한 말은 아니었는데 그것도 생색을 내었다 말합니다.
오늘 크게 다투었습니다.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모든 과정들을 제가 했습니다. 병원 추려서 뽑고 일일이 전화해서 재활의지 없는 환자는 어떻게 재활이 이루어지는지..최종 병원 선정도 제가 직접 가보고 결정했어요. 남편은 회사에 있고 제가 시간적 여유가 많은 직업이기도 하지요.
이 사람은 결혼 생활 내내 표현을 잘 안하는 스타일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제가 지칠 때도 있거든요. 사랑받지 못하고 있구나로 여자들은 여기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럴 땐 고맙다고 표현 해주는 거야~ 라고 말하니 권유한 그날은 기분좋아라 표현을 해주었습니다.
요양병원에 옮기면서 면회 시간이 바뀌었고 우리 일정에서 중간 텀이 1시간 반 이상이 뜨더라고요. 그래서 할 것이 없기때문에 중간에 텀이 있는것을 조금 볼멘소리를 제가 했습니다.
그리고는 남편은 오늘 가보면 어찌될지 알겠지.. 라고 말했고 저는 아무 대답 없이 핸드폰을 보고 있었어요. 그랬더니 이제 가기 싫으면 가지마!! 이러는 거에요.
자기 혼자 갈테니 너는 일주일에 전화만 해. 이러더라고요. 가기 싫은 티 혼자 다 내었다면서 그면 그 상황에서 가지 말라하지 뭐라하냐며 나중에 싸울 때 말하더라고요.
저는 가지 않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 갑자기 저래 버리니 화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그래 안가! 라고 말하고 서로가 다퉜습니다.
생색이란 생색을 다 낸다며 부부가 이런일 있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그게 무슨 고맙다는 걸 꼭 들어야 하냐며 온갖 자기 주장을 쏟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내가 매일 당신 시숙님께 내가 이러고 있으니 칭찬해줘 라고 했느냐, 아니면 일주일에 한번씩 나 이렇게 잘 하고 있으니 고맙다 하라 했느냐, 아니면 한달에 한 번 반드시 고맙단 표현 해주기 규칙을 정했느냐.
내가 생색낸것이 얼마나 있느냐 물으니 몇번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80%를 암말 없이 진심으로 전진했다면 20%간혹 지칠 때나 그럴때 80% 잘한걸로 상쇄되는것이 사람이라면 그래야 하는거 아니냐. 저도 쏘아 부쳤습니다.
그러니 현재 생색내고 있잖아!! 이렇게 말합니다.
면회가는 시간 중간에 텀이 있어서 조금 뾰루퉁 한게 천인공노할 일인가요?
그리고 지쳐서 격려좀 해달라고 표현좀 해달라고 했다 친다해도 지금까지 걸어온 1년중 암말 없이 걸어온 나머지를 생각해서라도 고마워 해야 하는게 정상아닌가요?
저도 현재 몸이 안좋습니다.
그럼에도 목디스크에 걸려 팔저리는 날에도 팔 머리에 올리면서 면회 갔었어요. 억지로 한적 없고, 남편이 시켜서 한 적 없습니다. 단지 시숙님이 불쌍히 여겨졌습니다.
남편은 말하네요.
그러면 대가 없이 했으면 끝까지 그래!!
생색내려하는 거 보일 때마다 아주 내가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고 … (더 이상한 이야기 했는데 말겠습니다.)
누가 보면 매일 생색낸줄 알겠어요.
누가보면 매주 마다 날 알아달라한줄 알겠어요.
누가보면 매달 날 위해 표현 해달라 약속해달라 한줄 알겠어요.
고작 일년 중 손에 꼽히는 몇 번의 고마운 표현 좀 해달라 말한게
천인공노할 생색을 낸거네요.
시숙님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비관하든지
부모복 없고 아내 복 없고 그 어떤 복도 자기에겐 없다면 하소연을 제 앞에서 쏟아부으며 시숙님 발병 초기 그런 모든 수모들과 아픔들도 다 지나왔고 견뎌냈습니다. 그나마 종교의 힘으로요.
서로 격려하고 고맙단 표현 해 줄때 내가 시숙님을 향한 더큰 동기가 부여되고 힘이된다고 절망의 말 내 앞에서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도 해보고 많이 좋아지긴 했지요.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그렇게 견뎠어요.
7년 넘게 이어지는 질병이 내게도 있는데 목디스크가 왔을 때는 정말 힘들었답니다.
그럼에도 걸어온 인생입니다.
시댁 이모님은 너 같이 할 수 있는 애가 어디 있겠니 말해주며 저를 격려 하십니다.
그런데 남편에게 듣는건
부부사이에 이런 일은 당연한건데 생색내지 말라며 고작 일년에 한 두번 표현 해달라고 해서 표현한 그걸 가지고 자기는 표현 했다며
거의 암말 없이 걸어가다 내가 간혹 지쳐 표현 해달라 말한 그것 때문에 지금 아주 분노가 났네요.
부부간에 시숙님 돌보는 일은 당연하단 말을 도움을 받는 입장의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인가요?
도움을 주는 당사자가 겸손히 할 수 있는 말 아닌가요? 염치가 정말로 있는 사람입니까?
저도 앞으로 모든 것에 손을 떼겠다고 했습니다.
정말 죄송한데 진짜 사람이 맞나 싶습니다.
면회가도 너가 있어야 형이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려 하는 것 같다며 너가 함께 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자긴 할 말도 없다고요. 자기가 무슨 말만하면 욕하고 화낸다고요.
진짜 다 내려 놓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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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현재 시숙님은 요양병원에 계시며 간병분이 계십니다. 지금까지 저희가 직접 수발든 적 없습니다. 간병분이 기저귀 갈고 다 하셨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건 매일의 아침 전화통화, 매주 일요일 남편과 함께 직접 면회 방문입니다. 매주 일요일은 무조건 시숙님께 가는 날로 저희는 암묵적으로 고정되었습니다. 남편은 다른 요일에 하루 더 들립니다.
인지가 온전히 돌아오지 않아서 매일 아침 전화 통하하며 여러 고충들이 있어 왔습니다. 때론 힘에 부치기도 하고요. 전화를 계속 거절함에 중간에 간병인분께 부탁하면 싫은티 내시고 간병인과 시숙님 사이가 너무 안좋아서 항상 시숙님이 간병인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다 하시니 그런 마음들을 위로하고 다독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전화를 거절함에도 지속적으로 간병인 분께 연락해서 다시 바꿔달라 할 정도로 한 이유는 이분이 인지가 다 돌아오지 않아서 거절한다는 것을 알기도 하거니와 인지를 회복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하여 어떻게든 아침에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좋은 긍정적 메세지를 들려드리려고 한 것입니다.
매주 일요일 마다 가는 것도 기쁨으로 해 왔으나 어느날은 지칠 때가 있었습니다. 가서 예배 드려드리고 말씀 공과 직접 플어보게 밑줄 긋게 해드리고 기도해드리고 부정적 생각 긍정으로 바꿔 드리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마냥 쉬운날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서 그 표현도 했어요. 힘들어도 가기 싫은 날이 유혹이 와도 정말 오늘 하루 일을 살아낸다는 심정으로 임했을 때도 있었다고 그러나 그런 심정으로 막상 가도 시숙님만 현장에서 보면 다 씻기고 또 시숙님을 위해 즐거운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나를 보며 내 안에 시숙님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부어주신게 확실하구나 생각했다고 말입니다.
이게 생색인지요...
그러니 자원하는 맘으로 시작했으면 끝까지 자원하고 생색내지 말래서 힘들었던 거 좀 표현한게 무슨 생색이냐니까 그게 생색이지 뭐냐! 부부끼리 당연한 일 하고 있는거 너 지금 힘들었었다 뭐다 말하며 생색내는거 아주 치가 떨린다고 저에게 말합니다. 내가 그래서 몇번을 생색냈냐...아무말 없이 걸어온 인생이 80%면 20% 힘듦의 고충토로는 당신 입장에서는 세이브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 라고 하니 횟수가 뭐가 중요하냐고 지금 생색내고 있으면 그게 생색낸거지!! 365일이면 내가 표현좀 해달라 한 건 고작 3-4건인거 같은데 360번은 암말 없이 걸은건데 이게 적당한 반응이 맞냐 라고 하니 몇번 한게 중요한게 아니라 지금 너가 생색을 내고 있다는게 중요한거라고! 말하길래....
일반 법에도 정상참작이라는 것이 있고 똑같은 죄된 일을 반복하면 가중처벌이란 것이 있다.
당신 안에는 내 일상 속에서 입다물고 걸어온 과정들을 통해 느끼는 정상참작의 일말의 양심은 없는거냐. 내가 가중처벌을 받을 만큼의 반복이 있었던 것이냐고 말했습니다.
진심 사람인가... 염치가 없어도 이리 없을 수가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제가 폭발한겁니다.
글에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생색?을 내게 되는 거지요
(생색을 내셨다 뜻이 아님)
알아주길 바라지 않아도
한번씩 고맙다 감사하다 미안하다 애썼다
등등.. 먼저 말해주면 생색 낼 일이 없지요
되려 알아주는 한마디에 힘도 내는 법인데.
남편 분 주변머리 없는 분이네요
시부모님도 아니고 시숙을...
ㄷㄷ
한번씩 도와주는 개념으로 하시지..
당연하다 여기잖아요
욕도 아까운 인사라 헤어지라고 하고 싶지만서도 각자 형편과 사정이 다르니..
그래도 슬슬 미래에 대해 준비 하시길 권합니다. 물질적으로든 심적으로든요.
일은하나? 거르세요 형님들 아군아닙니다
남편분 얘기도 들어봐야합니다
예배 원치 않으면 다른 거 하자고 말해도 괜찮다고 하자고. 그렇게 일년을 보내왔어요.
마치 우리 병실에 직접 오신 것 마냥 이야기 하시는 것이 당황스럽네요.
동생분 거 시부모 케어도 힘든데 그러지 마시지예~
글을 쭉 내리셔서 자세히 읽어보시면 내용이 나온답니다.
24.10.06 22:15 추천 774 조회 72932
수정 24.10.07 16:35
chinku 작성글보기신고 댓글
시숙님 뇌출혈 발병 1년이 되었습니다. 왼쪽 편마비, 인지 부족, 깊은 사고 못함, 혼자서 할 수 있는 일 없으심. 기저귀. 휠체어 이동이십니다.
시부모님 모두 돌아가셨고 시숙님은 미혼이라 아내도 자녀도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 쓰러지신 후 모든 과정들을 우리 두 부부가 해야 했습니다.ㅡㅡㅡㅡㅡ
ㅡㅡㅡㅡㅡ제목부터 여기까지만 읽으면
님이 다 수발하는것으로 읽혀집니다만.....
제목은 돌본다고 써놓으셨고요....
애매하군요 참....;
모든 과정들을 저희 부부가 해 왔다는 것은..
시숙님 쓰러지신 혼자 사신 자취방 .... 설명할 것이 많은 데 못하겠네요. 그 처리부터 시작해서 병원에서 중환자실에서부터 재활병원에 오기까지 남편이 정말 많이 고생했거든요. 반차를 수시로 써야 했습니다. 시숙님이 일 하시던 곳은 저희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과는 약 2시간 거리였던 걸로 기억해요. 아니면 1시간 반? 그런데 아침 시간에 출근 시간에는 항상 막히고. 올때도 그러하고요. 제가 대신 간병인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중환자실은 한 명만 된다하여서요. 남편이 자신 눈으로 직접 봐야한다며 남편이 갔습니다. 나중에는 중환자실에서 나와 휠체어에 계실때는 제가 갔습니다. 면회하는 장소에서 저랑만 만나셨어요. 그때도 눈도 제대로 못뜨실 때에요...저의 이름은 알고 계시더라고요..
그리고 여러 재정적인 문제로 시숙님 모든 주민등록부터 해결해야할 일들이 산더미였답니다.
개인사라서 더 자세히 설명을 못드리겠어요.
그 이후로 간병인이 다 더이상 못하겠다고 자꾸 욕설과 폭언을 하셔서요...
그래서 간병인이 너무 많이 바뀌게 되면서 저희들이 고심을 많이 했고 정말 힘든 시간들이 지나야 했답니다.
애매하게 글을 써서 죄송합니다.
글을 끝까지 자세히 읽어보시면 어떤 내용들로 제가 힘들어 했는지가 나옵니다.
경험해 보지 않으신 분들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가 공감을 강요할 수 없다 생각합니다.
위로해 주시고 공감해 주시는 분들이 훨씬 많으세요. 댓글 수만 보아도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실 위로 많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저의 남편은 무슨 간병을 한건가요?
나와 동일하게 병문안 가고 전화조차도 매일 저가 혼자하고 있는대요?
그럼 남편은 돌본것이 아닌것입니까? 남편은 평일에 한 번 더 퇴근할 떄 들리긴 합니다.
시숙님 간병비 병원비 기초수급 통과 등등의 일들을 처리하는 것은 그분의 삶을 돌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시숙님의 마지막을 평생 함께해야 하는 우리 부부인데 얼마나 지친 삶이었는지 남편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던 시간들이었는지 그걸 바라보는 저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님께서 어떤 부분을 이해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성경말씀을 전파한게 아니고요
시숙님은 기독교인이세요.
본인이 스스로 주기도문 등 혼자 대표기도 다 하십니다.
자기 가지고 있는 종교활동 하겠다는데
까칠어르신 님께서 어떤 의도로 말씀하고 계신거에요?
제가 그분께 강압적으로 예배를 드리라 했습니까?
제가 그분께 강압적으로 무엇을 하라 했나요?
매일 전화하는거 원치 않으시면 안하겠다 했습니다.
괜찮다고 하셨고.. 나중에는 전화주어서 고맙다고 표현하십니다.
뭘 더 설명드려야 하는 것일까요?
돌봄의 단어를 기저귀 갈고 간병 수발의 의미로 보신 거라면 저는 큰 의미로 해석하여 글을 쓴 것입니다.
오해를 불러 일으키게 했다면 양해 바랍니다.
아마도 법원가도 판사가 어쩔수 없을 겁니다.
배려가 지나치면 권리가 되는 법.
아내의 희생을 바란다면, 남편도 아내와 처가를 위한 희생을 하여야 마땅할 터.
혹여 남편분이 글쓴분을 위해서 혹은 친정을 위해서 무언가를 한 적이 있는지?
없다면, 이혼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모습은 좋은 사람이기에 서로가 헤어지지 않고 여기까지 온거 같아요. 힘든 일이 너무 많았어서요.
그래서 서로 조율해 가는 과정의 삶인데
몇 번 고충을 토로하니 생색내지 말라며 하지마라고 말하며
당연한 일이라 큰 소리 치는 모습에 제가 화가 났습니다..
어디 말할 때도 없네요.
이런 이야기 누가 듣고 싶겠나요. 친구가 시숙님 간병으로 항상 걱정해서 친구가 또 더 심하게 걱정할까봐 말하지 않습니다.
힘든 이야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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