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군대를 갓 제대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부천 원종동에 살고 있던 저는 복학하기 전에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강서구 운전면허 시험장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접수처에 신청서와 신분증을 제출하니 담당직원이 신분증상의 주소와 신청서의 주소가 다르니 변경해야 한다는군요.
아... 군대 가 있는 동안 집을 부천으로 이사한 걸 깜빡했구나. 집에 다시 가봐야 하나?
일단 전화로 알아보자는 마음에 근처 공중전화로 114에 전화를 했습니다.
"부천 원종동 동사무소 전화번호 알려 주시겠어요?"
"여긴 서울 114니까 032-114로 전화 하세요."
"아, 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114가 전국번호 안내를 안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032-114로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부천 원종동 동사무소 전화번호 알려 주시겠어요?"
"원종 1동이신가요? 2동이신가요?"
"네?"
1동인지 2동인지 모르던 터라 그냥 1동을 알려 달라했습니다. 원종1동 사무소... 320-3000. (여기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전화를 걸자마자 한 남자가 속사포같은 말투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안녕하십니까!이동**사무소입니다!"
음? 1동 사무소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2동을 알려주네?
뭐... 상관 없겠지.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이 남자가 한 말은 "안녕하십니까! 이동통신 사무소입니다!"였습니다. 너무 빨라서 "이동"과 "사무소"만 들렸던 거죠...)
"아 예... 주소를 변경하고 싶은데요"
"네 그러세요? 실례지만 어떤 전화 쓰세요?"
"네. 공중전화인데요."
"아 손님. 그게 아니라 손님, 핸드폰 쓰세요? PCS 쓰세요?"
"전 공중전화 쓰는데요?"
"아니요... 제가 말씀 드리잖아요. 핸드폰 쓰시냐구요 아니면 PCS 쓰시냐구요??"
"공중전화 쓴다니까요."
"진짜?"
"네"
"..."
왜 자꾸 물어보는거지? 좀 화난 것 같기도 하고 저는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저씨"
"네"
"저 공중전화 쓴다니까요"
"아 진짜! 장난하지 마시구요!"
"음... 장난 아니구요. 저 공중전화 쓰는 중인데?"
"야!!"
"네?"
"너 누구야!!"
음... 어이가 없었습니다. 동사무소 직원이 민원인에게 반말을 하다니...? 하지만 전 더욱 침착하게 답해 드렸습니다.
"저 그 동네 주민인데요."
"그럴 줄 알았어! 너 뭐하는 놈이야?"
"학생이요."
"고등학생? 아님 대학생?"
"대학생이요"
"너 대학생이나 되는 놈이 할 짓이 없어서 대낮부터 장난전화야? 너 지금 어디야?"
"서울인데요"
"서울의 다 니 집이야? 니 집 어디야?"
"부천 원종동인데요."
"뭐...? 아깐 서울이라며"
"서울엔 잠깐 나온건데요"
"장난 전화하러?"
"아뇨. 운전면허 시험 보려구요."
"..." (아저씨 말을 잇지 못하는...)
핸드폰 쓰냐 PCS 쓰냐 -> 공중전화 쓴다x3 -> 너 누구야? -> 이 동네 사는 대학생 -> 역시 면식범 -> 근데 집은 부천? -> 너 지금 어디야? -> 서울 -> 서울엔 왜? -> 운전면허 시험????
그 후로 몇분간 계속 험악한 대화가 오가고 나서 뭔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저씨... 거기 혹시 원종1동 사무소 아닌가요?"
"뭐 동사무소?"
"네 동사무소"
"여기... 서울 이.동.통.신 사무소입니다."
"아 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제가 032를 안 누르고 전화를 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아저씨 얼마나 화가 났을까 싶습니다. 가끔 생각날 때 술자리에서 이 얘길 하는데 다들 너무 황당해 하더라구요. 주작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고 ㅎㅎㅎ
이 글을 보시는 당신은 무슨 전화 쓰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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