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사건
“돈 탐하지 않는다” 약정서 쓰게 해‘공부자’(공부하는 사람)는 돈의 출처에 관심을 두지 않는 법, 역술가 천공이 이끄는 ‘정법시대’의 미덕이라고 했다. 그렇게 7년을 정법시대에서 ‘무임금’으로 일한 ㄱ씨(42)가 미덕의 실체에 대해 입을 열었다. “신도(제자)들이 임금이나 노동을 문제 삼으면 천공은 ‘욕심 탓’이라고 했어요. 불평하는 신도는 재정비(배제)하기도 했는데 싫든 좋든 소속된 집단에서 버림받는 일은 죽음보다 괴로우니까요. 무력할 수밖에 없죠.”
ㄱ씨는 2013년부터 7년간 교리를 익힌다는 명목으로 사실상 천공이 운영하는 정법시대에서 무임금 노동을 했다. 서울서부지법 민사9단독 최은주 판사는 지난 13일 ㄱ씨가 정법시대를 상대로 ‘받지 못한 임금과 퇴직금 일부를 돌려달라’고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월급과 퇴직금 1847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입증되지 못한 12시간이 아닌 하루 8시간으로 계산해 소멸시효가 남은 부분의 임금과 퇴직금이었다. ㄱ씨가 털어 놓은 파란만장한 7년엔 장기간 수많은 제자의 무임금 노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정법시대의 황당한 수법이 고스란하다.
ㄱ씨는 30대 초반인 2012년 유튜브로 천공 강의를 접한 뒤 공개강연을 들으며 정법시대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2013년 3월 ‘도량’(도를 닦는 장소)에서 숙식하며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공부할 영광을 준다”고 하니, ㄱ씨는 부푼 마음으로 경남 함양군으로 향했다. 정작 ㄱ씨가 한 일은 사과 농사였다. 머물 장소만 줄 테니 각자 밥값은 벌어야 한다는 거였다. 공부는 유튜브 강의가 전부였다. ㄱ씨는 1년 뒤 경기 용인의 한 아파트로 이동해 천공의 유튜브 강의 영상을 제작하거나 책을 만드는 업무를 이어갔다.
제자 10∼20명은 아침 식사와 회의를 마친 뒤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 일했다. 새벽 1∼2시까지 일 할 때도 잦았다고 한다. ㄱ씨의 전자우편함에는 새벽 시간까지 영상 원본 파일, 자막·필사 작업본, 전자책 출판 계획 등이 오간 흔적이 남아있다. “10년 넘게 그런 (농장과 출판·영상)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하고 나간 사람이 99%는 될 거예요.” 천공과 정법시대 대표 신아무개씨는 형식상으론 근로자로 등록하고 임금을 준 것처럼 했으나, 통장과 체크카드를 가져가 당사자는 월급이 지급됐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법원은 “(ㄱ씨 업무는) 천공과 신씨의 사업을 위한 것으로 이윤 창출은 모두 이들에게 귀속됐다”고 판단했다.
이런 노동이 어떻게 유지됐을까? 정법시대는 “돈을 탐하지 않는다”는 교리를 강조하며 ‘약정서’를 쓰게 했다. ㄱ씨는 사과 농장에서 일하던 2013년 9월 “소일거리로 주어진 제반 업무 및 노동에 대해선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므로 일체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내용의 약정서에 서명했다.
외부와의 고립도 문제제기를 어렵게 했다. ㄱ씨는 가족과 연을 끊으라는 약속까지 요구 받았다고 한다. “천공은 ‘너는 이제 하늘의 제자니까 공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어요. 임금이나 기본적인 수당은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이죠.” ㄱ씨는 2020년 6월 결단을 내리고 정법시대를 나왔다. 그 순간조차 천공은 “욕심이 있는 사람은 정법이 거슬리는 거다. 정법은 놓지 마라”고 ㄱ씨에게 당부했다고 한다.
하늘을 강조했던 정법시대 쪽은 법정에선 ‘지상’의 논리를 들어 반박했다. ㄱ씨가 작성한 약정서를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자원봉사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ㄱ씨의 급여 대장을 통해 임금이 정상 지급됐다는 점도 덧붙였다. 정법시대가 설립된 건 2017년이므로 그 이전 근무에 대한 퇴직금은 줄 수 없다는 논리도 폈다.
임금 청구 소송이 마무리되기 직전, 법원은 정법시대가 ㄱ씨에 청구한 금액 일부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화해를 권고했다. ㄱ씨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송의 본질은 천공에 세뇌당해 인생의 큰 뭉텅이를 빼앗겨 버린 손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는 것이고, (천공의) 불법·부조리가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그곳에서 (천공을 위한) 영상을 편집했던 저도 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보상보단, 많은 사람들이 실체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함께 무임금으로 일했던 동료 모두를 기억하고 있다는 ㄱ씨는 마침내 큰 짐 하나를 내려놓았다는 듯 승소한 소감을 말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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