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40년전인 1882년 더운 여름날 충주 장호원에 있는 아흔아홉칸 민응식의 집에서
불우했으되 총명했던 여자가 야반도주해 비루하되 신통력 있는 여자를 만났다.
총명한 여자는 성은 민씨요 이름은 자영이다. 훗날 사람들은 민비라고, 명성황후라고 불렀다.
신통력 있는 여자 이름은 박창렬이다. 사람들은 진령군이라고 불렀다. 진령군은 무당이다.
세간에는 이런 말들이 오갔다.
"어젯밤 진령군이 창덕궁에서 한 말이 다음 날 아침에 어명으로 내려오더라, 창덕궁 주인은 무당이라네"
1910년 한일합병이 되고 16일만에 음독 자살을 하신 매천야록의 저자 황현은
오하기문이라는 글에서 "왕비는 그 무당을 언니라 부르기도 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무당이 살던 북묘(관운장의 사당)에는 벼슬과 돈을 노리는 양아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그의 말 한마디에 화복이 걸려있어 수령과 변장들이 그의 손에서 나오기도 하였다.
나라가 무당에게 농락당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과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박종인이라는 분이 '땅의 역사'에서
삼키고 36년이라는 긴긴 세월동안
백성들은 신음하였고 굶주렸다,
그렇게 36년 이라는 긴 세월을 끝으로
왜놈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백성들은
만세와 소리와 함께 찬란한 꿈을 꾸었다,
그런 혼란을 틈탄 버러지 같은 친일파들은
다시금 자신들의 기득권을 잡고자 많은
사람들을 모함하였고 핍박을 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수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나라는 6,25
동란 이라는 동족상잔의 시련인 끔직한
전쟁을 치뤄 내야만 하는 엄청난 댓가를
치루었고 국민들은 또다시 굶주림에 죽어갔다,
나라의 역사는 반복이라 했는데...
왠지 너무나도 불길하다...
역사서의 제목이 왜 거울 감자를 쓰는지 모르는 것 같아 참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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