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관의 집안도 소위 독립운동을 한 집안인가
이종찬 광복회장과 자리를 한께 한 적이 있다. 그때 이런 얘기를 들었다. 그분이 육사를 지원하여 필기에 합격하고 구술 시험을 볼 때였다. 구술 시험을 보려면 당시로서는 추천서가 필요했다고 한다. 하기사 80년대 방위병 훈련소 입소할 때에도 조교가 "유력 인사 아는 사람 있나?"를 대놓고 물었으니 50년대에야 오죽했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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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경기고 3학년이었던 이종찬 응시생은 부친의 동지였던 광복군 출신 장성들, 민영구 제독과 김관오 장군의 추천서를 받아 제출했다. 당시 구술 면접관은 생도대장 이용 장군과 참모장이었다. 그 둘은 모두 일본군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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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이용 장군은 그 말많은 간도 특설대 출신이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행적에 대해 구질구질하게 변명을 늘어놓지는 않았고, "군인이 되고 싶고 조선인 부대라고 하기에" 들어갔으며, 김일성 부대 등 조선인 파르티잔 토벌이 임무였다고 덤덤하게 털어놨었다. 박정희 대통령에 아부하려던 이들이 박정희가 비밀 광복군이었다는 둥 황망한 얘기를 할 때 "그것 거짓말"이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더하여 6.25 때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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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역시 일본군 출신이라는 육사 참모장이란 물건이 이종찬 응시생에게 불쑥 이렇게 묻는다. "민역구 제독과 김관오 장군을 어떻게 아나?" 이종찬 응시생은 정석대로 아버지의 동지 분들이라 대답했는데 그때 이 참모장의 다음 질문은 이종찬 응시생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로부터 60여년 뒤, 여든 두엇의 이종찬 회장의 얼굴에도 노기가 서릴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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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귀관의 집안도 소위 독립운동을 한 집안이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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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이라면 이 질문의 뉘앙스가 어떤 것인지 능히 알 수 있으리라. '소위'라는 말이 들어갔을 때의 그 정색을 한 모멸의 의도, 카랑카랑한 조소의 빛은 듣지 않아도 들리고 보지 않아도 보인다. 이 이름모를 참모장은 '소위' 독립운동가들이라는 사람들을 깔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덴노 헤이까 반자이 외치며 돌격 훈련이나 했던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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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시 6.25 때 공을 세운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는 육사 참모장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군인이 되고 싶어서'든 '일본이 이길 줄 알아서'든 자신의 동족을 지배하고 있는 압제자의 칼날이 되고 창끝이 되어 살았다면, 이종찬 (동명이인, 참모총장으로서 이승만의 계엄령 요구를 거부하고 군의 정치 개입 거부 훈령을 내렸던)이나 김석원처럼 자숙하는 시늉이라도 하고, 독립운동가들과 육사를 지망한 그들의 자제에 대한 경의를 표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하물며 일본군 출신 '주제'에 그랬다면 6.25 때 무슨 귀신 같은 공을 세웠든 어찌 그가 대한민국 군인 자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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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이종찬 응시생은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고한다. 아버지는 일제의 고문을 받아 청력을 잃은 상태였다. 졸지에 자식을 '소위 독립운동가 집안' 의 일원으로 만든 아버지도 땅을 치고 분개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어렵사리 평정을 되찾은 이종찬 광복회장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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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받은 억울함을 안다. 우리는 이미 10년간을 그런 잘못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앞길을 피해간다면 되겠느냐? 바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 일제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일제잔재로부터 진정한 독립은 아직 안 끝났다. 앞으로 두고두고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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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듣고서 이종찬 응시생은 서울대 시험 (담임은 육사에 가지 말라고 읍소했다.)을 포기하고 육사 입학을 결심하게 된다. 그로부터 근 70년 가까이 지나, 나이 여든 일곱이 된 광복회장은 그의 모교에서 독립운동가들의 흉상이 '치워지고' 해방되기도 전의 '공산당' 경력을 문제삼아 모욕하고 폄하하며 자신의 후배들이 '경례를 할 수 없다'고 뻗대는 현실과 마주한다. 차마 그 심경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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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소위 한국 대통령이라는 자가 홍범도 장군을 두고 "뭐가 옳은지" 따져보자고 대들고, 소위 그 나라의 총리라는 자가 "홍범도는 공산당"이라고 떠드는 현실에서 이종찬 회장은 육사 참모장 개인이 아니라 수천 수만 개의 목소리가 그를 향해 떠드는 독화살을 맞는 듯한 아픔을 느끼지 않을까. "소위 독립운동한다는 것들이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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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한 아들,학교 담임은 그 실력으로 서울대학교에 가지 뭣하러 육사에 가냐고 아우성을 치는 아들이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던 선조들의 뜻 이어받겠다고 육사에 지원해설랑 '소위 독립운동가 집안'이라는 말을 듣고 돌아왔을 때 그 아픔을 극복해야 한다고 격려하던 아버지는 지하에서도 눈을 부릅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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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역시 지금은 지하에 있을 이름모를 육사 참모장은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으리라. "그럼! 역시 육사 후배들이야! 소위 독립운동한다는 것들 중에는 빨갱이들이 많았어! 독립운동하면 뭐해! 빨갱이들은 안돼! 홍범도 같은 이들을 어찌 육사 앞에 두겠나. 육사는 빨갱이들과 싸우려고 만든 학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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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된지 80년 가까운 이 즈음의 대한민국에서, 이미 체제경쟁은 끝나고 이미 봉건 왕국으로 전락한 북한을 경계하기 위하여 일생을 독립투쟁에 바친 독립운동가에게 이념의 굴레를 기어코 씌우고야 마는 이 기막힌 현실에 그저 참담하고 억울하고 열통 터지고 기가 막힌다. 벌써 어떤 이들은 이종찬 광복회장을 공격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도 그렇게 뇌까리고 있으리라. "뭐야. 소위 독립운동가 집안이야? " 아아 빌어먹을 소위, 사갈같은 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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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의 의무 근로의 의무 납세의 의무를 다 할것 처럼 나대는
2번당엔 어른이 없다
욕심은 하늘을 찌르고
고집은 태산을 누르고
뻔뻔함은 태양도 가리는
늙은이만 가득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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