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중력을 왼발로 견디느라, 엉덩이와 허벅지에 알이 다 배겼다. 페라리 296 GTB 이야기다. 인제스피디움에서 느낀 페라리의 새 수퍼카는 지금껏 경험한 페라리 중 가장 빠르고 즐거웠다. 작고 다부진 차체, 짧은 휠베이스, 전기 모터의 ‘지원사격’으로 이룬 830마력의 막강한 출력이 역대 가장 재미있는 페라리로 만들었다.
글 강준기 기자
사진 페라리, 강준기
엔트리 모델 아닌 새로운 미드십 수퍼카
“휘이이이이잉.” 강력한 포효를 녹음하기 위해, 패독 앞에 카메라 들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프리우스처럼 타이어 구름 소리만 뱉으며 트랙으로 입장. “순수 전기 모드로 최대 25㎞, 시속 135㎞까지 달릴 수 있습니다.” 토요타가 즐겨 쓰는 문구를 새빨간 티셔츠 입은 페라리 인스트럭터에게 듣다니, 이게 무슨 일이람.
그러나 까다로운 규제 앞에 무릎 꿇은 페라리는 아니다. 낮은 숫자(296)만 보고 엔트리 모델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페라리가 새롭게 개발한 V6 2.9L 가솔린 트윈터보 663마력 엔진에 167마력 전기 모터를 바로 뒤에 붙였다. 시스템 최고출력은 830마력. F8 트리뷰토보다 110마력 더 강력하며, 단위 중량 당 출력은 221cv/L로 SF90 스트라달레보다 높다.
그런데 차체는 한참 작다. 458 이탈리아 ? 488 GTB ? F8 트리뷰토로 이어지는 8기통 미드십 페라리보다 작은 체구를 지녔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565×1,958×1,187㎜. 휠베이스는 정확히 2,600㎜다. F8 트리뷰토보다 46㎜ 짧고 19㎜ 낮다. 휠베이스는 50㎜ 짧다. 공차중량은 1,470㎏으로 100㎏ 이상 가볍다. 페라리가 MINI처럼 ‘고카트 필링’이란 문구를 앞세운 이유다.
①클래식하면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
458 이탈리아 이후 페라리가 내놓은 디자인은 개인적으로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F40, 엔초 페라리처럼 휴대폰 배경화면 해놓고 싶은, 가슴 뛰는 스타일은 없었다. 488 GTB나 F8 트리뷰토의 외모를 보면 458의 잔상이 여전히 짙게 남았다. 그런데 296 GTB는 한 걸음 진보한 스타일을 지녔다. 낮게 수그린 차체와 새로운 눈매, 빵빵하게 튀어나온 골반이 기존 미드십 페라리와 꽤 다른 멋을 뽐낸다.
이유가 있었다. 296 GTB 디자인 팀이 레퍼런스 삼은 모델은 1963년형 페라리 250 LM. 옆과 뒷모습을 보면 어디를 참고했는지 단박에 이해가 간다. 뒤 펜더에 크게 뚫은 숨구멍, 그리고 패스트백 스타일이 아닌 객실과 엔진룸을 칼같이 나눈 구성이 대표적이다. 휴대폰에 띄운 250 LM과 296 GTB를 번갈아보면서, 정교한 조각작품 감상하듯 한참이나 넋 놓고 바라봤다. 60년 전 페라리의 전통을 가져와 미래로 연결하는 디자인 전략은 대단히 성공적이다.
②디지털 페라리
지붕 높이가 1.1m에 불과한 수퍼카인데, 의외로 타고 내리는 게 어렵지 않다. 헬멧을 쓰고 앉아도 람보르기니 우라칸처럼 머리 공간이 답답하지 않다. 가장 작은 페라리인데, 주변 시야는 의외로 시원스럽다. 모든 장비가 운전석을 바라보는 콕핏과 직경 작은 스티어링 휠, 노란 페라리 엠블럼, 구둣주걱 크기만 한 CFRP 패들 시프터가 분위기를 압도한다.
실내 역시 혁신 요소가 가득하다. 가령, 계기판은 아날로그 타코미터 대신 디지털 모니터를 끼웠다. 각종 버튼은 터치로 조작한다. 단, 물리 방식으로 남겨 둔 하나의 부위가 있는데, 바로 기어레버다. 마치 오래 전 4단 수동기어 갖춘 페라리처럼 생겼다. 오토(A), 매뉴얼(M), 후진(R) 기어 등을 조작할 수 있다. 주변을 크롬으로 뒤덮은 점도 오랜 페라리 팬을 흥분시킨다.
③가장 진보한 페라리
‘다운사이징’의 효과는 여느 차보다 극적이다. 기존 V8 3.9L 엔진보다 30㎏ 가볍다. 또한, V형 실린더의 뱅크각을 90→120°로 벌리고 그 속에 ‘골뱅이’ 두 개를 얹었다. 덕분에 엔진이 더욱 낮게 자리했고 부피도 한층 콤팩트하다. 엔진 앞뒤로는 7.45㎾h 배터리와 122㎾ 모터(MGU-K)로 감쌌다. 페라리의 최초의 V6 로드카이지만, 이런 구성은 F1에서 오랜 시간 다듬어왔기 때문에 낯설지 않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200㎞까지 가속 시간은 7.3초로, 골프 GTI의 0→시속 100㎞ 시간과 비슷하다. 830마력의 흉흉한 출력을 바닥에 붙들 비장의 기술도 눈에 띈다. 액티브 스포일러는 테일램프 위에 감쪽같이 숨었다가 속도를 높이면 날개를 펼쳐 최대 100㎏의 다운포스를 만든다. 덕분에 시속 200㎞에서 완전 정지하는데 필요한 제동거리는 단 107m에 불과하다.
차체 하부는 이른바 ‘티-트레이’로 구성했다. 앞 범퍼로 들어온 공기가 앞 차축을 누르고, 알파벳 ‘T’자처럼 앞바퀴 뒤쪽으로 흘러나가는 공기흐름을 만들었다. 또한, 6W-CDS(6방향 섀시 다이내믹 센서)는 회전 가속도와 주행속도를 모두 측정해, 역학제어 장치가 주행상황에 맞게 개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존 요 레이트 센서와 비교해 ‘자세’를 한층 섬세하게 제어한다. 그래서 가속과 제동, 코너 등 어디에서든 830마력을 안심하고 휘두를 수 있다.
④공포가 아닌 즐거움으로 다가온 830마력
드디어 296 GTB의 운전대 잡고 트랙으로 입장. 주행모드는 스티어링 휠 스위치 돌려 ‘스포트’에 놓고 서서히 기지개를 폈다.
기존 8기통 미드십 페라리와의 차이는 1번 코너부터 단박에 와 닿는다. 움직임이 한층 가볍고 경쾌하다. 짧은 차체와 휠베이스 덕분에 앞머리는 코너 안쪽으로 예리하게 찔러 넣고, 뒷바퀴는 하나의 덩어리처럼 따라붙는다. SF90과 같은 8단 F1 DCT는 운전자 손가락 끝마디와 연결한 듯, 지체 없이 기어를 바꾼다.
죽이 척척 맞으니 랩을 소화할수록 자신감이 쌓였다. 압권은 코너 탈출 가속이었다. 488 GTB와 비교하면 스로틀 반응속도가 대단히 빠르다. 저속부터 강한 출력을 쏟아내는 전기 모터 덕분에 터보차저가 빚는 찰나의 공백(터보래그)을 120% 메웠다. “코너 진입할 땐 속도 욕심을 버리고, 탈출 가속을 빨리 가져가는 게 이 차를 타는 핵심입니다.” 이탈리아 페라리 피오라노 트랙에서 온 인스트럭터의 설명이 와 닿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귀도 즐겁다. 6기통 페라리지만, 고회전으로 갈수록 V12 페라리와 똑 닮은 사운드가 사방을 메운다. 저속에선 프리우스처럼 세상 조용하고, 고속에선 12기통 고주파음을 뿜어내는 이 차. 움직임뿐 아니라 소리까지 즐겁다. 엔진의 회전한계는 8,500rpm인데, 워낙 순식간에 올라가는 바늘 때문에 절정의 순간에서 변속하는 게 어려웠다.
재미있는 건 830마력을 다루는 게 아주 어렵지 않았다는 점이다. 진공청소기로 노면을 빨아들이듯, 차체를 짓누르는 힘이 상당하다. 어떤 페라리보다 휠베이스가 짧지만, 직진 가속 상황에서도 앞바퀴가 가볍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덕분에 미니 JCW처럼 아주 경쾌하면서 즐겁게 다룰 수 있다. ‘살랑살랑’ 바깥으로 흐르는 꽁무니도 어렵지 않게 제어할 수 있다.
이날 외부 기온은 영상 25°C 안팎으로 꽤 후텁지근했다. 그런데 계기판 속 유온 게이지는 100도 이내를 꾸준히 유지했다. 약 20분 정도 달린 후, 마지막 랩은 전기 모터로만 주행하며 엔진 열을 식혔다. 그러자 유온이 85도까지 순식간에 내려갔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탑재는 단순히 효율 높이기 위한 장치가 아닌, 치열하게 몇 바퀴 더 달릴 ‘체력’을 늘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⑤총평
페라리 296 GTB. 작은 체구와 전기 모터의 시너지는 막강했다. 무엇보다 458의 디자인 그늘에서 벗어난 새 얼굴도 매력적이다. 도심에선 전기 모터로 숨죽여 달리며 존재감을 숨길 줄도 안다. 순수 전기 모드로 25㎞까지 달릴 수 있으며, 엔진과 조합한 공인 복합연비는 7.8㎞/L,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49g/㎞에 불과하다. 458 이후 배경화면으로 저장하고 싶은, 가슴 뛰는 페라리를 오랜만에 마주했다.
<제원표>
하마터면 이글 못보고 살뻔 했네요
저렇게 낮고 가벼워서 불편해서 못타겠네요
페라리 타는 사람이 귀찮게 배터리 충전하고 다니겠냐.. 하시겠지만, 포르쉐, 벤츠 phev 차주들 보면 아주 용을 쓰면서 하루도 안빼고 충전기 물려둡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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